유니티와 데카르트 좌표계

Posted by ITPangPang
2016. 6. 13. 00:42 Unity3D/기타 이것저것..


유니티와 데카르트 좌표계



ㆍ학창시절이나 살면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유명한 명언을 들어본 적이 있을겁니다.


   유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의 명언입니다

   데카르트의 많은 업적이 있으나 그 중에서도 수학계에서는

   직교좌표계(데카르트 좌표계)가 가장 중요한 업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데카르트 좌표계는 여러분이 학창시절때 배웠던 좌표 x,y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는 다른 그래픽적인 공부를 안해서 그런지 x,y좌표가 굉장히 익숙해서 헷갈리지 않았는데

   다른 그래픽 하시는분들은 유니티 좌표계가 조금 낯설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고 한 기억이 있네요




뭐 이런식으로 (0, 0) 잡아서

(x, y)를 따라서 점 찍어주는 식으로해서

배웠었는데(이게 데카르트 좌표계)


다른 그래픽개발자분들은

UV좌표계라는 것도 사용하신다고

하네요(찾아보니 좀 다르긴하네요)


헷갈리지 않기 위해 찾아보기만 하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답니다 ㅎㅎ.


나중에 UV좌표계도 배울일이 생기면

그때 머릿속에 넣으면 되니..



딴소리가 길었는데

유니티에서도 수학에서 배웠던것처럼

그대로 사용합니다.


유니티로 넘어가서 한번 보겠습니다.


Object 하나 생성해서

(x,y)를 (0, 0) 놓아보았습니다

저 위치가 0, 0이겠네요

(z는 값은 생략했습니다)


x,y값을 변경하면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해보았습니다.


좌표 비교를 위해

0,0 오브젝트는 Scale을 0.5, 0.5으로 낮추고


하나의 오브젝트를 하나더 생성해서

(1, 0)에 위치시켰습니다



(1, 1)에도 위치시켜보고~



(-1, 1)에도 위치시켜보고~



(-2, -3)에도 위치시켜봤습니다


이런식으로 기준점을 잡고

비교를 하면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를 알기 쉽습니다.


데카르트 좌표계에 영상을 봤었는데

이 직교좌표계가 탄생한 일화가


천장에 붙은 파리를 보다가

파리의 위치를 어떻게 표현하지

할까 하다가 탄생했다고 하네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ㅎㅎ..)


어쨋든 이런식으로 기준을 잡으면

2D 좌표든 3D 좌표든 위치를 

표현하기 쉽다고 합니다.


Object간 위치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 좌표를 잘 이용해야하므로


한번 끄적여봤습니다

끄적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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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티와 데카르트 좌표계  (1) 201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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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데카르트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겼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책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